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턴 1세 (문단 편집) === '황제' 열풍의 이유 === >that he had shed no blood; robbed no one; and despoiled no country; which is more than can be said of his fellows in that line. >'''한 방울의 피도 흘리게 만들지 않았으며, 누구도 약탈하지 않았고, 그 어떤 나라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은 점. 그 점에서 그와 같은 부류(다른 [[군주]])들에 비해 훨씬 나은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 데일리 알타 캘리포니아 [[https://cdnc.ucr.edu/cgi-bin/cdnc?a=d&d=DAC18670122.2.3&srpos=1&e=22-01-1867-22-01-1867--en--20-DAC-1-byDA-txt-txIN-%22Arrest+of+the+Emperor%22-------1|#]] 노턴의 이러한 행적은 단순히 당시 [[미국인]]들이 노턴이 [[정신이상자]]인줄 몰라서 그렇게 대우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황제]]' 대접을 받을 수 있던 이유는, 당시 바다 건너 [[유럽]]의 여러 [[군주국]]에서 터져나오던 모순 가득한 소식들과 비교했을 때 미국인 자신들이 이룩한 [[민주공화국]] 건설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을 보자면 남들이 전부 [[입헌군주제]] 하는 척이라도 할 때 혼자서 대놓고 [[전제군주제]]로 [[백성]]들을 [[농노]] 취급하던 '''[[러시아 제국]]''', [[입헌군주제]]의 딱지를 붙였으나 실상은 [[황제]]([[카이저]])가 다해먹고 [[국민]]들을 부리고 있던 '''[[독일 제국]]''', 아예 [[카이저|황제]]의 존재로 국가가 유지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나랏돈이 거덜나고 [[나바리노 해전|다른 열강에게 뚜까맞고]] 그 결과 [[그리스]]를 잃었는데도 [[파디샤|황제]]가 할것은 다해먹던 '''[[오스만 제국]]''', [[콩고 자유국]]을 개인 사유지로 삼아 잔혹한 착취와 학살을 서슴지 않았던 '''[[벨기에 왕국]]'''의 '''[[레오폴드 2세]]''', 그 잘난 [[민주주의]]를 자랑해대면서 동시에 [[영국 국왕|군주]]가 수틀리면 [[의회해산|의회고 뭐고 다 갈아버리는]] 게 헌법에 박혀있는 '''[[대영제국]]''', [[프랑스 2월 혁명|수십년 전 국민의 피]]로 얻어낸 [[프랑스 제2공화국|공화정]]을 엿 바꿔 먹고 [[나폴레옹 3세|황제]]를 다시 옹립한 '''[[프랑스 제2제국]]''' 등 하나하나가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이들 중 지금까지 국체와 정체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 [[벨기에]]는 여전히 국왕이 총리를 갈아버리고 [[의회해산|의회를 날려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관습]]을 존중하여 그리 하지 않을 뿐이다.] 미국이 근대적 입헌주의와 삼권분립이 보장되는 헌법을 만들고 세계 최초의 대통령제를 설립했을 때, 유럽의 모든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이에 자극을 받았고 이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또한, 노턴 1세 본인 역시 망상 증세를 제외하면 어디까지나 '미국의 안위를 걱정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보'를 보였고, 스스로가 '황제'가 되면서 얻는 인기와 명예를 [[범죄]]에 사용하지 않았다. 즉 '''그저 정신이 약간 이상할 뿐이지 그 내면은 순박한 [[노인]]'''이라는 점이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호감을 샀다고 볼 수 있다. 즉, 황제의 '지배'를 인정한 시민들의 입장에서 노턴 1세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재산]]을 빼앗지 않는, 그저 정신만 약간 이상한 평범한 노인"이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고, 차별하며, 착취를 일삼는 유럽의 군주들"보다 '미국인들을 지배할 군주에 걸맞다'는 [[풍자]]로써의 의미로 노턴을 '''시의 마스코트로 받아준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대로 노턴이 회사나 시 단위에서 정중한 대접을 받은 데는 [[어른의 사정|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바로 [[샌프란시스코]]는 어려운 시기에 노턴 덕에 상당한 관광 수익을 얻었다는 점이다. 노턴은 [[골드 러시]]가 시들해지며 샌프란시스코가 불황에 빠졌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노턴의 기행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그를 보거나 만나려고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는데,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이상 [[숙박]], [[음식]], [[교통]] 등에 돈을 써야 했다. 이 방문객들이 소비한 돈은 샌프란시스코에게는 실로 가뭄에 단비와 같았을 것이다. 식당을 예로 들자면, 노턴을 보려고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사람들은 [[식사]]를 하려면 대부분 노턴의 인증을 받거나 그가 직접 추천한 [[식당]]을 갔을 것이다. 최고급 식당들이 노턴에게 기꺼이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고, 노턴의 허락을 받아 "[[미슐랭 가이드|황실 인증 식당]]"이라는 기념패를 달은 데는 다 [[마케팅|이유가 있던 것]]이다. 노턴의 전기를 쓴 윌리엄 드루리(William Drury)는 [[엘리자베스 2세|노턴이 샌프란시스코에게서 얻은 이득보다 샌프란시스코가 노턴 덕에 얻은 이득이 훨씬 컸다]]는 식으로 서술했다. 비유하자면 노턴 1세가 일종의 '샌프란시스코 지역 [[홍보대사]]' 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를 들어 [[한국철도공사]]는 [[명예역장]] 제도를 운영하는데 이 사람들이 실제로 [[역장]]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홍보대사일 뿐이다. 심지어 [[점촌역]]은 사람도 아닌 [[강아지]]를 명예역장으로 임명해놨고, 일본에는 [[토끼]]를 [[미야우치역(야마가타)|역장으로 임명한 곳]]도 있다. 관광수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노턴 1세와 장단을 맞춰주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가 유명해져서 그런 뜻밖의 홍보대사 효과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쫄딱 망해서 어디론가 잠적했다가 갑자기 자기가 황제라며 나타난 옛 이웃을 무시하지 않고 장단을 맞추며 어울려준 당시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인심과 재치도 무시할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